얼마 전, 오랜만에 미술관에 갔다가 저를 멈춰 세운 그림을 만났어요. 보는 순간 결혼식 당일의 남편과 제가 떠오르더라고요. 지금까지 지나온 모든 시간들이 스쳐 갔어요. 그땐 몰랐죠. 아기를 기다리며 수년간 고된 시간을 보내게 될 줄은요. 난임 병원에 처음 갔던 날 남편의 표정부터, 유산했을 때 입원실에서 쪽잠 자던 남편의 헝클어진 머리까지 많은 장면들이 마음속에 한꺼번에 밀려왔어요. 🌊

돌이켜보면, 저는 유산했을 때를 제외하고 난임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마 몸보다 마음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었겠죠. 주사를 맞을 때마다, 질 초음파를 볼 때마다 에너지가 줄줄 세는 기분이었어요. 새로 생긴 '난임 커플'이라는 정체성에 스스로를 맞춰가는 데 시간이 꽤 필요했어요. ⏳

오케이키 난임 커뮤니티에서도 많은 분들의 이야기 속에서 난임 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겪는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지 실감하곤 해요. 그래서 이번 오케이키 편지에서는 그 '초기'의 과정을 지나고 있는 문덕지름이✏️님을 만나 이 시기를 어떻게 통과하고 있는지 들어봤어요.

제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지름님은 난임 생활 1년 차고, 유산을 겪었음에도 자신의 방식을 찾아 멘탈 관리를 이어가고 있었어요. 무너진 일상에 휘청이지 않고 나를 유지하는 회복의 비법🍀, 이번 편지에서 함께 나눠볼게요.👇

Q. (본격적인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문덕지름이(이하 '지름님'), 닉네임이 독특해요. 어떤 의미인가요?

문구덕후라서 ‘문덕’이고요. 지름신이 자주 강림해서 ‘지름이’예요. 그렇다고 크게 지르는 건 아니고요, 소소하게 문구나 책, 소품 같은 것들이에요. 저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두 단어를 합쳐 닉네임을 만들었어요.

작년 12월 처음으로 난임 병원에 갔어요. 그동안 피임을 한 것도 아닌데 한 번도 임신이 되지 않아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요.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이었어요.

2018년에 결혼하면서 동시에 사업을 시작하고, 매일 바쁘게 일하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6년이 흘렀어요. 근데 돌아보면, 바쁘다는 핑계로 난임 병원 방문을 계속 미뤄왔던 것 같아요. 혹시 문제가 있다고 할까봐 무서워서 피해왔나봐요.

인공수정부터 해볼까 했는데, 이왕 시술을 받는 거라면 가장 적극적인 방법으로💪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바로 시험관 과정으로 진입해서, 채취하고, 바로 이어진 신선 이식으로 임신이 되었어요. 그때는 '이렇게 될 것을 왜 그렇게 미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내가 임신이 안되는 몸은 아니었구나' 싶어 기뻤어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첫 피검부터 수치가 낮더니 결국 7주에 유산하게 되었어요.

이후 동결 이식을 한 번 더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지난달 전원해서 지금은 세 번째 이식을 앞두고 있어요.

아기집을 보고 심장소리를 들어야 하는 진료를 앞두고 있었는데 배가 심하게 아팠어요. 화장실에 갔는데 몸에서 뭔가 덜컹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설마 싶어 바로 병원에 갔더니 아기집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예요. 애초에 기대를 안 했으면 몰랐을까 순차적으로 잘 가다가 중단되니 무척 가라앉았어요.

저도 저지만, 남편도 힘들어했어요. 말로는 “너무 걱정하지 마”라며 저를 안심시켰는데, 유산을 확인하고 병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운전하던 남편이 조용히 울고 있더라고요.

Q. 유산 후 힘들어하는 커플도 많은데, 휴식기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병원에서 회복을 위해 몇 달은 쉬라고 하잖아요. 그때 ‘이 시간 동안 뭘 해야 할까’ 막막했는데, 남편이 갑자기 제안을 하더라고요. “차라리 잘됐어. 우리 지금 몰디브 가자.”

그렇게 상상도 못 했던 여행을 떠났어요. 멘탈이 완전히 무너져 있던 때였는데, 바다에서 수영하고, 달리기도 하고, 몸을 움직이니까 갑자기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상어떼와 수영하는 새로운 경험도 했던, 그 여행이 유산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어요.

Q. 난임 생활에는 어쩔 수 없이 시험관에 과몰입하게 되는데, 지름님은 그런 모습이 거의 없어 보여요. 비법 좀 알려주세요.

저도 하루 종일 검색하고, 댓글 보던 시기가 있었어요. 한동안 인스타그램 피드가 전부 임신 관련 글로 도배되기도 했죠. 그런데 유산을 겪고 한 사이클을  지나니까, 그게 조금 줄더라고요.

올해 7월부터는 매일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데요.  정말 도움이 됐어요. 난임 생활을 하다 보면 병원 일정, 몸의 변화, 결과 통보 하나에 따라 마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락내리락하잖아요. 이럴 때 일기를 쓰면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스스로 어떤 감정인지 알아차리고 대처할 수 있어요. 엉켜있던 감정 덩어리를 풀어서 재배치하는 기분이었어요.

그리고 덕질이요! 😁 덕질이 정말 생존에 도움이 된다니까요. 일하고, 운동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챙기다 보면 하루가 모자라요. 

Q. 8월에 쓴 일기 중에 이 부분이 정말 와닿았어요. 이 부분에 대해 더 이야기해주세요. 

올해 난임병원에 다니고 유산을 겪으며 처음으로 남편과 내가 가족이 되었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어떤 어려움이 와도, 어떤 방해가 있어도 이 사람은 내 편이구나. 내 가족이구나. 

요즘엔 남편이 회식에서도 술을 안 마시더라고요. 식단도 같이 하고, (태어나 처음으로) 달리기도 해요. 함께 손잡고 같은 걸 희망한다는 게 얼마나 큰 위로이며 기쁨인지 알게 됐어요.

돌이켜보면, 결혼하고 첫 6년보다 지난 1년 아기를 기다리며 훨씬 깊은 대화를 나눴어요. 예전엔 저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책상 앞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남편은 게임을 하면서, 각자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이제는 서로의 마음과 생각을 자주 나누니, 부부로서 훨씬 더 단단해졌다고 느껴요.

(카후나: 남편과 기쁨과 슬픔, 기대와 실망—그 모든 감정을 나누며 가족이 되었다는 말에 저도 공감해요. 손잡고 함께 위기를 뚫고 간다는 경험은 확실히 관계를 단단하게 해준다는 것을 저도 저희 남편과 3년간 난임 생활을 하며 느꼈어요.)

Q.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최근에 스스로 자주 하는 말인데요. 요즘 일기장에도 자주 써요. 결국 다 잘된다. 불안할 때 일수록 더 자주 나에게 말해줘요.

'안 될지도 몰라’라는 생각은 몸을 더 긴장하게 만들잖아요. 그럴 때 의식적으로 결국 다 잘된다고 자주 말하면서 마음과 몸을 긴장하지 않은 상태로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지금 아기를 기다리는 분들도 속는 셈치고 스스로에게 자주 말해보셨으면 좋겠어요. 결국, 다 잘된다.

지름님이 찾은 멘탈 관리의 비법은 남편과의 깊은 대화, 일기 쓰며 내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마주하기, 운동하기, 그리고 덕질하기였는데요. 각자 방식은 다르지만, 지름님의 방법에 공감하시는 분이 많을 것 같아요.🍀

지름님과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지름님은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참 성실하게 돌보는 사람이구나. 꼭 정원사🪴처럼요! 자신의 마음과 몸에 매일 물을 주고, 잡초가 자라면 부지런히 뽑아주니 난임 생활을 하면서도 일상이 무너지지 않은 것 같아요. 

혹시 님의 멘탈 관리 방법은 무엇인가요? 나만의 비법이 있는 분들은 혼자 알지 말고 꼭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링크)

지난 편지에도 많은 분들이 답장을 보내주셨어요. 

💬 “미처 몰랐는데 첫째와 함께 임신을 준비하는 과정도 정말 어렵네요.”
💬 “둘째 난임 생활 속에서는 ‘첫째가 있잖아’ 이 말을 정말 자주 듣게 되서 힘 빠질 것 같아요.” 😔
💬 “저도 안 됐다고 하면 주변에서 ‘아유, 다음엔 꼭 될 거야’ 하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게 불편했어요. 저도 '고생했어'.'라는 말이 훨씬 적절하다고 생각해요.”  
💬 “저도 둘째 준비 중이여서 엄청 공감하면서 봤어요. 저희 첫째도 주사 맞을 때 기다려주거든요. 밤박하님이 꼭 다음 이식에 둘째 만나시길 기원해요. 🙏"

보내주신 답장 모두 밤박하님🌰에게 잘 전달했어요. 11월 15일에 다음 이식을 앞두고 계신데 큰 응원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