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황금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저는 풀벌레 소리가 듣기 좋아 밤에 창문을 열고 잠들었다가 코감기에 제대로 걸렸어요. 🤧

그래도 좋아하는 과일이 나오는 철이라, 홍로 사과, 배, 대추, 무화과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으며 회복 중이에요.🍎🍐 님도 제철 과일로 면역력 챙기시면서, 올가을 감기 없이 지내시길 기원하면서, 오늘의 이야기 시작해볼게요.

지난 편지에도 많은 분들이 답장을 보내주었어요. “지수님, 제발 몇 번만 더 해보시면 안 되냐”는 간절한 응원부터, “저도 사주에서 임신운이 들어왔다길래 두 번 더 시도했다가 임신했다”는 경험담까지 그 마음들을 지수님께 잘 전했어요. 짧지만 강력한 응원들이 모여 지수님이 다시 한 발 내딛을 힘이 되길 바라면서요.🙏

오늘 편지의 주인공은 밤박하님🌰이에요. 40개월 첫째🧒🏻를 키우며 둘째를 기다리는 중이에요. 통계적으로 둘째 난임이 첫째보다 더 흔하지만 주변의 공감은 오히려 적다고 하는데요. “한 명 있으면 충분하지 않아?”라는 말을 들을 때, 혹은 아이와 함께 병원 대기실에 있다가 시선을 받을 때, 그 마음은 어떨까요?

밤박하님의 둘째 임준 라이프는 어떤지 만나서 자세하게 들어 봤어요.

Q. 밤박하님, 인터뷰 시작에 앞서 난임 여정부터 말씀 부탁드려요.

첫째(보니)는 자연임신으로 21년생이에요. 첫째 돌 때부터 자임 시도를 했는데 잘 안 되더라고요. 본격적으로 난임병원에 다니기 시작한 건 24년부터예요. 인공수정 세 번 시도하고, 반 년 넘게 쉬었어요. 인공 3차에 난소가 꼬이는 난소 염전을 겪고는 시술하기가 공포스러웠거든요.

용기내서 시험관으로 넘어와서는 채취 2번, 이식은 4번 했어요. 곧 5번째 이식을 기다리고 있어요.

Q. 난소 염전, 정말 아프다고 들었어요.

인공수정 시도할 때도 주사를 계속 맞았거든요. 난소가 부어 있었나 봐요. 시술하고 집에 왔는데, 그날 밤부터 생리통처럼 아프더니 점점 숨도 못 쉬겠다 싶을 만큼 통증이 심해졌어요. 아예 움직이지 못할 정도가 되어 구급대🚑가 와서 결국 들것에 실려갔어요. 첫째가 충격받을까 봐 다른 방으로 분리해서 TV를 보여주었네요.

병원에서 가 확인해보니 난소가 꼬였다 다시 풀린 상태라고 다행히 큰 처치는 필요 없었지만 그 고통은 정말 말로 다 할 수 없었어요. 제왕절개로 보니를 낳을 때보다 더 아팠어요.😫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들은 대부분 첫째 난임 기준이잖아요. 이식하고 눕눕하라고..하데요? 눕눕을 어떻게 해요? 심지어 주치의 선생님도 이식하고 나서는 '쪼그려 앉지 말라, 첫째 목욕도 남편이 시켜라, 첫째는 안아주지 말라’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죠.

보니가 맨날 업어달라고, 나가자고 보채는데 안 들어줄 수가 없어요. 저는 난임 시술 때문에 아이를 안아주지도 못하고 살고 싶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이식하고도 이 빡센 일상을 견디고 올 아이라면 와라하는 마음으로 지냈어요. 

2차 이식하고 나서 보니와 단둘이 남이섬으로 여행을 갔어요. 육아휴직을 하면서 오래 벼르던 소원이기도 해서 미루지 않고 떠났죠.

그런데 아이와 함께라 이동이 계속 늦어지더니, 주사를 맞아야 하는 시간이 되버린 거예요. 눈앞에는 드넓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펼쳐져 있었는데, 사방이 뚫린 벤치에서 맞을 순 없잖아요? 보니를 꼬셔서 카페로 들어갔어요.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테이블에 앉힌 뒤 물어봤죠.

"보니야, 엄마가 지금 주사를 맞아야 해서 화장실에 잠깐 다녀올 건데, 여기서 아이스크림 먹고 있을래? 아니면 같이 갈래?’"

보니가 대답했어요. ‘음… 엄마랑 같이 갈래.’ 지금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대답인데, 아이스크림이 있으니 조금은 고민하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하하)

결국 좁은 화장실에 함께 들어가 손과 약을 소독하고 주사를 맞았어요. 구석에 서 있던 보니가 제게 묻던 말이 아직도 생생해요. ‘엄마, 언제 끝나요?’

그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요. 프룰루텍스 약제가 끈적하잖아요? 주사액이 천천히 들어가는데, 그 시간을 묵묵히 기다려 준 게 참 애틋했고 고마웠어요.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소중한 순간이에요.

(카후나: 저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장면이 그려져 마음이 찡했네요.)

Q. 친구들과 공동 육아를 하며 쉐어하우스에서 살고 계신 걸로 알아요. 같이 사는 친구들 중에서도 난임 시술하는 분이 있나요?

쉐어하우스에서 총 8가구가 같이 살고 있어요. 다들 잘 되는데 저만 안 되고 있네요. 한 명은 이식 2차만에 쌍둥이를 임신했고, 옆방 친구는 셋째 임신 중이에요. 그 옆방 친구는 임신이 정말 잘 되는 체질이라 '스치기만 해도 임신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예요.

Q. 주변의 임신 소식을 듣는 걸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자주 듣는 거 어떠세요?

괜찮아요. 이 친구들이 임신했다고 해서 제가 안 되는 건 아니잖아요. 인과관계가 아니니까요. 친구도 되고 나도 될 수 있는 거지, 친구가 되면 내가 안 되는 건 아니니까요. 한 자리 놓고 둘이 시험보러 가는 것도 아니고요. 오디션이 아니니까요.

Q. 시험관을 하면서, 밤박하님에게 가장 힘든 건 어떤 부분인가요?

제가 '이번에 비임신이었어요'라고 하면 가까운 사람들이 마치 큰 우환이 있는 사람처럼 과하게 위로를 해요. 마음은 알지만 무조건 불쌍하게만 보는 것 같아 속상해요. 저는 마냥 슬프거나 스스로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제 기준에서 슬픈 일은 가족이 병에 걸리거나, 아이가 아픈 거예요. 임신이 안 된 건 물론 아쉽지만, 그렇게까지 위로를 받아야 할 일인지는 모르겠어요. 미디어에서 시험관의 힘든 모습만 강조해서 그렇게 반응하는 것 같기도 해요.
또 ‘숭고하다’, ‘위대하다’ 같은 말도 듣는데, 참 어색했어요. 그냥 내 아이를 갖고 싶어서 하는 건데, 그게 숭고한 일인가? 나라를 구하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Q. 그렇다면, 주변에서는 어떤 반응을 해주는 게 가장 도움이 될까요?

남편이 어느 날 묻더라고요.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해줬으면 좋겠어? 수고했어, 이건 돼?’ 그래서 제가 그랬죠. "그래, 수고는 했으니까 수고했어, 좋네. 그 정도면 돼."

그래서 남편이 쉐어하우스 친구들에게도 전했어요. 앞으로는 ‘힘내라’, ‘다음엔 잘될 거야’ 같은 막연한 위로 말고, 그냥 담백하게 ‘수고했어’라고 해달라고요.

Q.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시험관이 슬프고 우울한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씩씩한 여성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물론 혼자 견뎌야 하는 순간이 많아 외로울 때도 있지만, 사실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잖아요.

저는 원래 뭐든지 최악을 먼저 상상하고 무척조심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시험관도 ‘너무 힘들겠다’고만 생각하며 두려워하기만 했는데요. 막상 해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거예요. 어쩌면 내가 시작하기 두려운 세상에 많은 일들도 막상 해보면 괜찮을 수도 있겠다.. 이런 감각을 얻었어요.  

밤박하님🌰과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서, 남이섬 카페 화장실에서 주사를 맞던 두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이식 후, 14kg이 넘는 보니를 안아 올리며 눈을 질끈 감을 밤박하님의 얼굴도요.

눕눕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둘째 임준의 길이지만, 밤박하님은 자기 연민 대신 하루하루를 정성스럽게 살아내고 계셨어요. 일상을 단단하게 가꾸는 힘, 그게 바로 임준 기간을 통과하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용기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다음 편지를 받으실 때까지, 작은 미션이 있어요!🍁

출근길 거리에서, 아파트 단지에서, 근린 공원에서 [산책+단풍 놀이]를 하고, 색색의 낙엽을 벤치나 바위 위에 조르륵 올려놓고 사진을 찍어주세요. 📸 찍은 사진을 이 편지에 답장으로 보내주시면, 미션 완료! 🍂

선물을 드려요!

가을의 정취를 함께 느낄 산책 미션을 완료한 분들 가운데 10분에게 스타벅스 가을 메뉴(블랙 글레이즈드 라떼)를 선물로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