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오늘은 가을 날씨에 어울리는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하면서 시작할게요. 🎵 (음악을 틀어놓고 이 편지를 읽어도 참 잘 어울릴 거예요.)

가을은 참 신기해요. 여름 내내 들떠 있던 마음도 선선한 바람을 맞으니 훨씬 차분해지고요. 하루를 조금 더 느긋하게 보내면서 나와 주변을 돌아보게 해줘요. 잔잔해진 마음으로 오늘 편지를 열어봅니다.

여섯 번째 오케이키 편지의 주인공은 지수님👩🏻이에요. 친구의 친구로 알게 된 지수님은 2021년부터 4년 동안 채취 21차, 이식 12차라는 여정을 걸어왔어요. 지난 7월에 만났을 때 지수님이 스시를 먹다가 “저 이제 난임 그만하려고요.”라고 말했어요. 그 후로 ‘정말 그만두셨을까? 지금 마음은 어떠실까?’라는 질문이 계속 맴돌았어요.

그래서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그러면서도 그만두는 마음을 어떻게 물을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어요. 하지만, 고민이 무색하게도, 애매한 걸 딱 싫어하는 지수님답게 제 질문에 솔직하고 분명한 답을 들려주었어요. 그럼 지수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봐요. ▶️

Q. 간단히 난임 여정부터 말씀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2020년에 결혼했고, 본격적인 난임 시술은 2021년부터 시작했어요. 4년 동안 채취 21차, 이식 12차를 통과했고, 원인은 저의 난소기능저하(이하 난저)였어요. 

Q. 결혼하면서부터 아이에 대한 마음이 확고하셨나요?

아뇨, 사실 전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난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여러 이유로 마흔에 결혼을 했어요. 마음이 잘 맞는 남편을 만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고, 이 나이에 아이까지 바라는 건 욕심 같아 임신에 대한 마음은 내려놓고 있었죠. 그런데 결혼한 해, 아무런 준비도 기대도 없는 상황에서 임신이 되었어요. 결국 자궁외임신 판정을 받았지만, 그 일을 겪으면서 제가 ‘엄마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때 병원에서 “아기 엄마, 괜찮아요. 애는 또 찾아올 거예요.”라고 계속 말씀해 주셨는데, 마음 깊은 곳이 흔들렸어요. 잃고 나니 내가 아기를 원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렇게 난임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어요.

Q. 그렇게 시작한 난임 시술, 처음 시작했을 때는 어떠셨어요?

처음부터 고용량 주사를 맞아도 난자가 1~2개밖에 안 나왔어요. 남들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치지 말아야겠다'라고 마음을 다잡으며 시작했어요.

Q. 난임 생활 초반에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까요? 

1년 정도 쉼 없이 채취를 하다 보니 공난포가 나오더라고요. 주사도 다 맞고 그런 결과를 받으니, 충격이 너무 커서 엉엉 울고 말았어요. 주치의 진료를 꼭 보고 가고 싶어 들어가 여쭤봤죠. “공난포가 나왔는데, 이런 건 미리 알 수 없는 건가요?” 그런데 선생님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초음파만으로는 알 수 없어요.

이런 건 흔히 있는 일이에요.”라고 말하곤 “난임 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 학교 다니듯 그냥 오시면 되잖아요?”라고 이어 말씀하시더군요.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주치의가 내 기대와 실망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제일 큰 건 저녁 약속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원래는 주 3~4일은 술자리가 있을 정도로 사람들을 많이 만났거든요. 전화번호부에 천 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런데 난임을 시작하면서 술도 못 마시고,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함께할 수가 없었죠. 친구들이 “다음에 보자” 하다가도 몇 번 거절하다 보니 결국 모임 자체가 없어져 버렸고, 천 명이 넘던 인맥이 절반 이하로 줄었어요. 

의외로 크게 아쉽진 않았어요. 난임 때문에 못 나간다고 했지만 사실은 남편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더 즐거웠거든요. 진짜 소중한 관계가 누구인지 알게 해준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예전엔 스트레스를 술로 풀었어요. 소맥 말아 파도타기, 새벽 2~3시까지 마시는 스타일이었는데, 난임을 하면서 술을 끊고 나니 몸도 마음도 훨씬 건강해졌어요.

맞아요. 인간관계가 정리되고, 인생에 북적임이 사라지고 고요함이 찾아왔는데, 그 속에도 재미가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전에는 몰랐는데, 저는 이런 삶도 좋아하는 사람이더라고요.

Q. 난임 기간 중엔 주변 사람들로 인해 힘들 때도 있는데, 그런 관계는 없으셨어요?

제가 소개한 병원에서 40대 친구들이 연달아 임신했어요. 대부분 채취 두 번, 이식 서너 번이면 임신이 되더라고요. 처음엔 '저 친구들이 됐어? 그럼 나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착상 한 번이 안 되면서, “아, 나는 정말 안 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저는 살면서 누가 크게 부럽거나 질투심이 난 적이 없었는데, 난임 시술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부럽다’는 감정을 깊이 느꼈어요. 신은 저 친구들에게 원하는 걸 다 주시는구나, 이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Q. 지난 7월 우리가 만났을 때, 이제는 멈추고 싶다고 이야기했었는데 참 어려운 결정이었을 것 같아요.

4년 동안 그렇게 많은 시도를 했는데 단 한 번도 임신이 되지 않았어요. 나이도 있고(만 44세), 이제는 현실적으로 더 어렵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주치의에게 언제까지 할 수 있냐고 물으면 보통 만 45세까지 권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나도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이제는 후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Q. 그러면 이제 병원에는 안 가시는 건가요?

훔.. 사실... 제가 지난주 사주를 보러 갔었어요. 근데 그분이 그러시더라고요. 지금까지 제 인생에는 임신수가 없었는데, 올 9월부터 내년 3월까지는 임신수가 강하게 들어와 있다고요. 난임을 그만두겠다고 결심했는데도 그런 말을 들으니 또 마음이 흔들리더라고요. 아직 제 마음이 확실히 정리되지는 않았어요. 아직은 갈림길에 서 있는 것 같아요. 멈추려는 결심도 있고, 또 흔들리는 마음도 있어요. 이게 지금 솔직한 마음이에요. 

지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생각했어요. 끝을 결심하는 일은 어쩌면 새로운 시작을 결정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큰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요.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수없이 흔들리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겠죠.

오늘 지수님의 솔직한 마음을 담은 이 편지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영감이 되기를 바랍니다. (카후나가 지수님에게 했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기회가 닿는다면 지수님의 다음 소식도 전할게요. 

마카다미아 님의 사연 💬

지난달에 8차를 끝났고, 다시 9차를 시작해야 하나 여기서 멈춰야 하나 그 기로에 서있습니다. 가끔은 내가 진짜 원하는 건지, 아니면 오기인건지도 헷갈리기도 합니다. 8차 동안 PGT를 한 번도 통과하지 못했기에 과연 통과가 될 수 있는 건가 하는 큰 막연함이 저를 자꾸 멈추게 하네요. 그러다 보니 걷기 운동도, 식단도, 영양제로 이전대로 잘 하지 않게 되는 저를 보며 단단했던 마음도 무뎌지는 지금입니다.

카후나의 답장 ✍️

마카다미아님, 8차라는 긴 여정을 걸어오신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하시다고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 과정을 통과해낸 스스로를 꼭 인정해 주세요. PGT 8차를 견뎌낸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요. 오케이키에서 만난 여러 사례를 보면, 오히려 걷기·식단·영양제가 느슨해질 때 좋은 소식이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어요. 저는 그 점이 희망적으로 다가와요.

그리고 잠시 임신이나 시험관, PGT 생각을 내려놓고 시간을 보내보시는 건 어떨까 추천해보고 싶어요. 저도 큰 고민이 생기면 일상이 무너지는데, 그럴 때 더욱 오늘 하루를 잘 보내는 일에 집중하면, 어느샌가 답이 떠오르는 경험을 하거든요.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내 삶에서 정작 정말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할 때가 있으니까요. 이 답장을 읽으시면, 마카다미아님의 소식도 꼭 들려주세요. 응원하면서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