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요즘 아침에 창문을 열면, 느껴지는 바람이 꽤 시원하더군요. 이게 바로 입추 매직이구나 싶었어요. 그러더니 오늘은 하루 종일 비가 내리네요. 시원한 빗소리처럼 많은 분들에게 좋은 소식이 찾아오길 바라며 오늘 편지 시작합니다. 🙏

지난 달 보낸 <오케이키 편지> 3, 4호에 많은 답장을 주셨어요. 특히, 설국님 인터뷰(링크) 마지막 부분에 대한 언급이 많았어요. "모든 사람이 난임을 겪는 건 아니지만,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더라고요. 그러니 제발 쓸쓸해지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혼자가 아니예요." 혼자가 아니라고 해주셔서 감사하다고요. 그만큼 난임 기간 각자 견디고 있는 외로움의 무게가 크다는 것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어요. 

4호 편지에 실린 약사님 인터뷰(링크)처럼 다양한 전문가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보고 싶다는 요청도 있었는데요. 앞으로 난임 전문의, 배양실 연구원님 등 다양한 인터뷰도 준비해보려 해요. 

님! 오늘 인터뷰의 주인공은 수르야님👩🏻이에요. 수르야님은 18년부터 23년까지 총 5년간, 채취 23차, 이식 17차를 거치며 난임 여정을 이어오셨죠. 그리고 2024년 1월 일란성 아들 쌍둥이👦🏻👦🏻를 만났어요. 그간 유산을 9번이나 경험하며 참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한 수르야님에게 궁금한 게 많아 인터뷰 요청을 드렸어요. 

Q. 18년부터 23년까지 5년간의 난임 라이프, 시작이 궁금해요.

자연 유산을 두 번 겪은 후, 난임 병원에 갔어요. 나팔관이 막혀 있다는 진단을 받고, 시작된 여정이었죠. 이후 남편의 9번의 염색체 이상(염색체역위)과 저의 난관수종 등을 발견하게 되었어요. (이중 9번 염색체가 난임의 원인인지, 유산의 원인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어요.)

처음에는 시험관을 권하길래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겠다며 시술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이렇게 오랜 기간 시험관 시술을 하게 될 줄. 그땐 몰랐죠. 큰 부담 없이 시작해서 일까요. 주사 맞는 것도 거부감 없었어요. 그냥 몇 차례 더 하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심하게 임했던 것 같아요.

Q. 23차 채취, 듣기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어떤 경험으로 기억하세요?

나중에는 습관처럼 되더라고요. 생리 시작하면 자연스럽게 병원 예약하고, 주사 맞고, 그 과정이 자동으로 이어졌어요. '당연히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꾸준히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오기도 생기더라고요. 지금까지 해온 것들을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근데 남편이 없었으면 못했을 거예요. 제가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100% 남편 덕분이에요. 항상 옆에서 공감해주고 위로해주며, 저의 선택을 존중해줬어요. 돌아보니 새삼 무척 고맙네요. 요새 육아 때문에 엄청 싸우는데. (하하)

Q. 수르야님의 난소 기능이 정말 좋았던 걸로 기억해요. 난자가 잘 나오는 것도 오래할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아요. 

AMH 2.63로 시작했고, 5년 뒤 마지막 검사에서도 2.04가 나왔어요. 채취하면 평균 10개 정도 나왔어요. 채취한 누적 난자 갯수를 120개까지 세다가 세는 걸 멈췄네요. 

Q. 이식 17차를 하신 것도 대단하시네요. 매번 희망이 생기고 또 무너지는 그 롤러코스터를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제가 워낙 무뚝뚝한 성격이라, 이식을 해도 감정을 크게 쓰지 않아서 그랬을 것 같아요. 그리고 ‘되겠지’라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었어요. 계속하면 언젠가는 될 거라고 믿었죠.

Q. 아이들을 만난 마지막 이식이 시험관 시술의 마지막 차수였겠네요. 

당시에 제 인생이 조금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저는 주말마다 캠핑도 가고, 남편과 잘 놀러 다니거든요. 교외로 나가면 그냥 앉아서 물소리 들으면서 술 한잔 홀짝이고, 혼자 사색도 하고 남편과 밤새 이야기도 나누는 게 소소한 행복인데, 그때는 그 모든 것들이 다 병원과 연결되니 자주 가지도 못했어요. 남편과 캠핑 가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병원 이야기밖에 안 하는 거예요. 나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었어요.

게다가, 그 시기에는 정부 지원 차수도 끝나고, 많은 비용이 들어가니 자연스레 현실적인 걱정이 따라왔어요. 노후 걱정도 되는 거예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둘 다 같은 생각이었어요. 남편은 ‘이번이 마지막이다’라는 마음을 혼자 품고 있었고, 저는 ‘더 이상 못 버티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이야기를 털어놨더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너무 민감한 주제고, 조심스럽게 대했던 것 같아요. 두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이니까요.

Q. 그런데 그 차수에 아이들이 온 거네요. 정말 극적이에요. 마지막 차수 이야기도 좀 들려주세요.

주치의 선생님이 3배를 3개 넣자고 하셔서, 큰 기대 없이 이식했어요. 그 당시 마음은 ‘되면 좋지만, 안 되더라도 뭐’ 하는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그런데 두 줄이 뜨고 아기집까지 보여서 놀랐어요. 그런데 출혈이 정말 심했어요. 아침에 프롤루텍스를 맞는데, 바닥에 뚝뚝 떨어질 정도였으니까요. 이미 9번의 유산을 겪었기 때문에 더욱 유산 엔딩이라는 마음의 준비도 했었어요. 

아기집을 보고 출혈 때문에 당시 병원에 매일 갔는데, 주치의 선생님께서 태반이 약간 벌어졌다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유산 안 될 거라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일명 '자궁을 강화하는 주사'를 처방해 주셨고, 면역글로블린도 추가해서 처방해 주셨어요. NK 세포 수치가 높지 않아서 면글을 맞아본 적이 없었는데 1차 피검 결과에서 NK 수치가 확 올라가 있더라고요. 따로 요청한 것도 아니었는데, 선생님께서 알아서 검사를 진행해 주셨어요. 그 주치의 선생님 아니었으면 그때 또 유산했겠구나 생각해요. 

Q. 돌아보면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요?

제가 마지막 차수 전까지 한 번도 임신 8주를 넘긴 적이 없어요. 그래서 마지막 임신 당시 8주 차 초음파 보러 갈 때 정말 긴장했어요. 근데 선생님이 초음파를 보시면서 아무 말씀도 안 하시는 거예요. 혹시 '또 유산했구나, 잘못됐구나 잘못됐구나' 싶었는데, 선생님께서 "논문에서만 읽어봤는데 실제로 처음 보네요. 배아가 일란성 삼둥이가 되었었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하나의 아기집 안에 아기와 난황이 3쌍이 있는 걸 보여주셨어요. 그러면서 웃으시며 이렇게 덧붙이셨어요. 유산 많이 했다고 병원 올 때마다 자꾸 늘려오지 말라고요. (그때 보였던 아이는 주수 차이가 나서 예후가 좋지는 않을 거라고 설명해 주시기도 했어요.)

10주쯤이었나? 그때도 선생님께 유산할까 봐 무섭다고 했더니, “이제 유산 걱정하지 말고, 아이 둘을 어떻게 키울지 나 걱정해요”라고 하시더라고요. 불안에 떨던 날들이었는데, 그날은 기분이 꽤 좋았어요. 제 상황을 잘 아는 선생님이 그렇게 말해주셔서 이번엔 진짜인가 보다 싶어서 크게 와닿았어요.

Q. 그때 유산에 대한 두려움이 정말 크셨을 것 같아요. 

그렇죠. 그래서 임신 기간 내내 걱정만 했어요. 임신부로서의 행복감을 한 번도 제대로 누리지 못했어요. 처음 태동을 느낀 게 21주였는데, 그 전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하이베베로 심장 소리를 확인했어요. 태동을 느끼기 시작한 후에도 안심하기 어렵더라고요. 쌍둥이라 방금 태동이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을 때는 계속 걱정이 됐어요. 그게 아직도 아쉬워요. 

Q. 난임 생활 중 가장 힘든 고비는 언제였나요?

Q. 마지막으로, 과거로 돌아가 시험관 1차를 하는 나를 만날 수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요? 저차수나 이제 시작하는 분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놈의 만보 걷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시험관 시술 세계에 표어처럼 돌아다니는 말이 있잖아요. “걸어라, 물 많이 마셔라, 아르기닌 먹어라” 같은 이야기들요. 저도 운동이나 생활습관을 모두 임신과 연결해서 스트레스가 쌓였던 것 같아요. 당시 만보걷기를 너무 열심히 해서 그런지, 지금 쌍둥이를 키우는 와중에도 무릎에 물이 차서 아파요. (하하)

강박적으로 운동과 임신을 연결짓지 말라고, 그러지 않는 게 더 건강한 삶의 자세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르야님의 강인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었어요. 저라면 그 많은 유산 후에 계속 도전할 용기를 내기 어려웠을 것 같거든요. 저는 차수가 거듭될수록 '이게 될까?'라는 의심이 점점 커졌는데, 수르야님은 '될 거야'라는 마음을 유지하신 것도 참 인상적이었어요. 어느 날은 희망이 용기를 만들고, 또 어떤 날은 용기를 내면서 희망이 커지는 경험을 하며 계속할 힘을 얻으셨겠구나 싶었어요.

그럼, 수르야님이 예전에 오케이키 멤버들에게 보내셨던 편지(링크)를 공유하며 오늘 인터뷰를 마무리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