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케이키 편지 인터뷰 주인공은, 예고한 대로 저의 남편🧔🏻‍♂️이에요.

남편은 평소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요, 특히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서는 더 그래요. 빨리 잊고 다음으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이 강한 것 같아요. 그래서 난임 기간 동안 그의 마음이 어떤지 출산 후에도 제대로 물어보질 못했어요.

그래서 이번 인터뷰를 기회로 남편에게 꼭 묻고 싶었어요. 난임 기간이 그의 삶에서 어떤 경험이었는지.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기뻤던 순간은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무엇을 잡고 버텼는지 몰랐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어요.

저희는 20개월된 딸을 재우고 식탁에 마주 앉았어요.

Q.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카후나 남편 잭(48세)입니다. 2020년 카후나와 결혼하며 서울로 이주한 독일인이에요. 6개월 동안 자임 시도를 하다가, 난임 검사를 받았어요. 검사 결과, 무정자증에 가까운 극희소정자증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죠. 정상적인 정자 수는 정액 1ml당 약 6백만 개 정도이지만(출처: 서울 아산 병원, 링크), 제 검사 결과에는 숫자 5가 적혀있었어요.

Q. 진단받았을 때, 충격받진 않았나요?

놀라긴 했지만, 충격까진 아니었어요. 목숨에는 지장이 없잖아요. 큰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요. 근데 아내한테는 미안했죠. 시험관이 아니면 임신을 시도조차 할 수 없으니까요. 이런 상황인 줄 알았으면 연애를 시작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Q. 지금에서야 이렇게 침착하게 이야기하실 수 있는 거겠죠? 아내의 말로는 그때 결과를 믿지 않으셨다고 하던데요. 직접 봐야겠다고 중고 현미경을 사기도 했고, 재검을 총 세 군데에서 받아 보기도 하셨다고요.

그랬던가요? 이제 기억도 안 나네요. 안 좋은 건 빨리 잊는 습관이 있어서...

그래도 염색체 검사를 하고 나서는 인정하게 되더라고요. 염색체가 그렇다는데 어쩌겠어요? 제가 뭘 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카후나 코멘트💬: 남편은 1,000명 당 1명꼴로 발생하는 로버트소니언 염색체 전좌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이는 한 염색체의 일부가 다른 염색체로 옮겨간 현상으로 유전자의 결실 또는 중복이 없어 본인은 건강해요. 자신도 모르고 살다가 임신이 잘 안돼서 난임 병원에 가서야 이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요. 난임 원인은 참 다양하고, 생각보다 흔해서 놀랐어요. 관련 링크)

Q. 난임 검진부터 출산까지 그 4년 동안 뭐가 가장 힘들었나요?

기약 없음이요. 이걸 도대체 언제까지 해야 하나, 그 불확실함이 정말 괴로웠어요. 난임 시술 기간이 이렇게까지 길어질 수 있다는 것도 몰랐어요. 당연히 두세 번 만에 임신하는 줄로만 알았어요. 그 3년의 시간을 요약하면.... 제가 20대엔 군인이어서 표현을 이렇게 하게 되는데.... 그때 기분이 딱 철조망 아래서 포복 훈련을 하는 것 같았어요. 근데 훈련에는 끝이라도 있죠! 그것만 보면서 견디는 건데요. 이건 언제까지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게 참 괴로웠어요. 

Q. 그거 말고는 다른 건 없었나요? 

당연히 더 있죠. 제가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무력감이요.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에서 벗어나기 어려웠어요. 아내만큼이나 저도 간절하게 아기를 바라는데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그냥 옆에 지켜보는 것이 유일하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땐 다 말하지 못했지만,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는 것도 괴로웠어요. 특히 비임신으로 한 차수가 끝나면 2~3주 동안 카후나는 제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극도로 우울한 사람과 함께 사는 것도 쉽지 않더군요. 그땐 차마 말하지 못했지만, 차라리 우리가 만나지 않았던 때로 돌아가면 어떨까, 이런 상상까지 하기도 했어요.

Q. 그렇게 힘든 그 시기에 그럼 뭐가 좀 도움이 되었나요? 

맥주요. 전 무척 단순해요.

계속 비임신이라고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평소처럼 저는 제 인생을 살았어요. 좋아하는 맥주 마시러 가고, 기분 좋아지는 오토바이 영상이나 사진도 자주 보고요.

Q. 외국인으로 한국 병원에서 난임 진료를 받는 건 어떠셨어요?

독일에 비해 비용이 훨씬 저렴하고, 예약도 쉽게 할 수 있고, 대체로 큰 불만은 없었어요. 언어로 불편했던 적도 거의 없었고요. 다들 저보다 영어 잘하시던데요?

근데 그건 있어요. 병원에서 저를 한 사람이 아니라 ‘환자 번호’나 ‘카드 번호’로 본다고 느낀 적이 많아요. 예를 들면, 극희소정자증 진단을 받았을 때에도 체계적인 설명 없이 검사 결과지만 받았고, 원무과에서 결제하고 가라는 안내만 받았거든요. 

Q. 마지막으로 난임을 겪는 다른 부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둘은 한배를 타고 있다는 걸 잊지 마요. 서로를 비난하고, 미워하면 결국 배가 가라앉지 않겠어요?

서로 하는 말을 더 잘 들어주고, 일상에서 작은 기쁨을 챙기면서, 가끔은 여행도 가면서 아기가 없을 때만 누릴 수 있는 생활에 집중하면 좋겠어요. 다들 포기하지 않는다면 곧 육아로 피곤한 일상을 살게 되실 거니까요. 지금을 누리세요!

여기까지 말하곤 남편은 졸리다며 이만 마치자고 했어요. 옛날이야기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면서요. 저는 남아서 휴대전화에서 2020년부터 2023년까지의 사진을 열어보며 추억 여행을 시작했어요. 웃을 일이 없는 암흑의 시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밝은 표정의 사진이 많더라고요?

난임 기간 동안 남편이 한 일이 전무했다고 생각했는데, 사진 속 제 표정을 보면서 깨달았어요. 그가 묵묵히 제 일상을 지켜줬다는 사실을요. 말하지 않는다고, 생색내지 않는다고 한 게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이제 와서 돌아보니, 난임 시술을 인생의 중심에 놓고 기대하는 미래가 당장 오지 않는다고 난리 치던 저완 달리, 남편은 현재의 삶을 살줄 알았네요. 그때는 그 모습이 참 철없어 보였는데, 돌아 보니 남편이 “바다 보러 양양 가자”, “한강에 산책하러 가자”, “피맥하러 나가자”라고 해준 것들이 결국 저를 지켜준 거네요. 이 인터뷰를 하면서 그 사실을 더 뚜렷하게 깨달았어요.

(카후나와 잭의 이야기가 더 궁금하시면, 카후나 책 <봄에의 믿음>을 참조해 주세요. 링크)